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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여행/해외 관광 명소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 프라하 카를교 야경과 동상 --- 체코의 필수 여행 코스

by newpark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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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많은 관광지가 넘쳐 나지만, 옛 보헤미안들의 정서와, 조용한 풍광을 즐기기 위해선,

다른 곳 보다는 체코의 프라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많이 들어 본 ‘프라하성의 야경’,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강과 그 위에 고색찬연히 서 있는 그 유명한 카를교 야경,

그리고 그 카를교 위에 있는 여러 동상들과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까지.......

프라하로 떠나 보시겠습니다.

 

프라하 성

 

프라하 성, 그 역사와 아름다움

 

프라하 성은 중세 도시 프라하의 아름다운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이 성은 체코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곳으로,

다양한 건물과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9세기에 설립된 이 성은 중세 시대부터 현재까지 체코의 역사적 중심지로 여겨지고 있으며, 체코 국가의 상징이자

국민적인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프라하성 내부의 주요 건물

1. 세인트 비투스 대성당:

세인트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 성 내에 위치한 이 대성당은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사원으로서 중세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선사합니다.

 

비투스 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1344년에, 찰스 4세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의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불행하게도, 1419년에 대성당의 건축은 후스 전쟁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대성당은 건축의 지속을 확보하기 위한 몇몇 군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 세기 동안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완공을 위한 연합회가 신고딕 양식으로 원래의 부분을 보수하고 성당을 완공하기 시작했고, 1929년에 엄숙하게 축성되었으며, 이후에도 내부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2. 황금 골목:

작은 다채로운 집들로 이루어진 황금 골목은 과거의 장인과 상점 주인들이 사는 곳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전통적인 공예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완공을 위한 연합회가 신고딕 양식으로 원래의 부분을 보수하고 성당을 완공하기 시작했고, 1929년에 엄숙하게 축성되었으며, 이후에도 내부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프라하 성 내부

 

3. 보헤미안 왕궁:

보헤미안 왕궁은 체코 왕실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로, 궁전 내부의 아름다운 공간을 탐험해보세요.

 

4. 스테이너 성:

고대 역사와 박물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체코의 귀중한 문화 유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프라하 카를교

1. 카를교 역사

프라하 카를교

 

카를교는 프라하 중심을 흐르는 블타바 강 위에 보존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 중 하나입니다.

기둥들은 1357년, 점성가들에 의해 특별히 경사스러운 것으로 계산된 날짜에 찰스 4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소도시와 구시가지 입구에는 각각 타워로 요새화 되어 있습니다. 이 다리는 16개 아치를

통해 구시가지와 소도시를 연결합니다. 길이는 520미터, 폭은 10미터이며, 1836년까지 블타바 강

위에 있는 유일한 다리였습니다.

 

그 후 1928년까지30개의 조각상이 다리 교각에 놓여지게 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1683년에

세워진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입니다.

 

이 다리는 1870년에서야 현재의 이름을 얻었고, 그 때까지 단순히 ‘스톤 브릿지’라고 불렸습니다.

몇 세기 동안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통행료가 부과 되었습니다. 수익은 기반 시설의 유지

보수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이 다리는 교통 수단들이 완전히 통제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처럼 완전히 보행자들의 다리로 굳어졌습니다.

2. 카를교 야경

카를교 위에서 보는 야경도 멋지고 그 주변에서도 아름다운 불빛의 카를교 야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스팟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카를교 야경과 그 위로 프라하성의 야경을 동시에 한 장면에 담을 수 있습니다.

 

프라하의 상징 중의 하나인 이 카를교 야경은 주변에 빛나는 탑들, 배경으로 펼쳐진 프라하성과 그 외 건물들, 하나의 배경 역할을 하는 블타바 강 자체의 마법, 그리고 주변의 흩어져 나오는 거리 음악가들의 반주는 모든 방문객들을 마법에 걸린 저녁을 위한 완벽한 조합을 제공합니다.

3.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

카를교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

 

1838년 요한은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하여 교회법 박사가 되었고 그 후 여러 교회에서 일을 하다

1390년 프라하 대주교의 대리가 되었습니다. 1393년 대주교는 보헤미아 국왕 바츨라프 4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을 파문시키고 프라하 지방에서 새로운 주교직을 만들려는 야망을 좌절 시켰습니다. 이 때 요한은 대주교의 수석 대리인으로 체포가 되었고,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왕에 의해서 염소 가죽에 싸여 블타바 강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더 주목할 사건은, 위와 같이 국왕 바츨라프 4세와 프라하 대주교간의 사이가 좋지 않을 시기에, 요한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의 두 번째 부인인 조피 왕비의 고해 성사를 맡은 신부였습니다. 어느 날, 국왕이 왕비가 저지른 잘못을 알아내기 위해 왕비가 고해를 했을 요한 네포무크를 불러 그녀가 한 고해성사의 내용을 말하라고 했는데, 요한은 사제로서 신이 금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사실 왕비가 요한 네포무크에게 고해를 할 때 왕의 신하가 그것을 엿듣고 왕에게 고자질을 해서 왕은 네포무크에게 왕비와 정을 통한 사람의 이름을 대라고 고문을 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왕은 자신에게 내용을 말할 수 없다면 누구 하나의 생명에게 말해 보라고 했고, 그는 옆에 있던 개에게 뭔가 귓속말을 했답니다. 확실히 하나의 생명에게 뭔가 말하긴 했지만, 그 모습을 본 왕은 화가 폭발하여 결국은 병사들에게 그를 고문하고 죽여서 블타바 강에 내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이야기로 인해서, 카를교의 이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은 많은 방문객들이 미래에 다시 이 프라하에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며 손을 너무 만져서 반들반들해져 있습니다.

어떤 관광객들은 충성의 상징인 그 동상의 바닥에 있는 개를 만지며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 아랫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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